정부 R&D 예타 폐지 ‘기대반 우려반’…”신속한 연구 필요” vs “예산 낭비 커질라”

정부 R&D 예타 폐지 ‘기대반 우려반’…”신속한 연구 필요” vs “예산 낭비 커질라”

[서울=뉴시스]윤현성 기자 = 정부가 국가 R&D(연구개발) 사업에 대한 예비타당성 심사제도를 16년 만에 전격 폐지하기로 했다.

과학계와 그 주변에선 기대반 우려반이다. 과학계에선 법제 정비를 거쳐 예타 제도가 폐지될 경우, AI(인공지능)·반도체·우주·양자·첨단바이오 등 주요 분야의 혁신 기술 개발에 속도가 붙을 것이란 것이란 기대감이 흘러 나온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예타가 폐지될 경우 무분별한 예산 낭비·중복 투자 논란과 더불어 과도한 R&D 사업 쪼개기 등 부작용 을 우려하는 시각도 만만치 않다.

◆ 과학계 “R&D 예비타당성 폐지될 경우 신속한 R&D 추진”

5일 과학기술정보통신부 등에 따르면 정부는 R&D 예타를 전면 폐지하고 1000억원 이상 대규모 사업의 경우에만 새로운 사전 검토·심의 제도를 적용하기로 했다. 이를 통해 기존에 최소 2~3년 이상이 소요되던 R&D 사업 착수 기간이 수개월~수년 가량 줄어들 것이라는 게 정부의 기대다.

예타 제도는 지난 1999년 공공부문 재정 투명성·안정성 확보를 위해 첫 시행됐다. 주로 건설사업 등이 대상이었던 예타 제도는 2008년부터 R&D 부문까지 확대 적용됐고, 2018년부터는 R&D의 특수성을 고려해 예타 제도 소관이 기획재정부에서 과기정통부로 위탁 이관됐다.

당초 1999년 예타 제도의 첫 도입할 당시에는 IMF 위기 이후 국가 재정 건전성을 강화하겠다는 취지였다.

하지만 최근 들어 전 세계적으로 기술 패권 경쟁이 강화되고 R&D ‘속도전’이 벌어지면서 과학계에서는 예타 제도를 개선·폐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이어졌다. 경쟁국들이 빠르게 치고 나가는 사이 우리나라는 예타 심사 등으로 인해 크게 뒤처지는 경우가 잦았다는 것이다.

예타 제도가 ‘당락 결정’을 내리는 만큼 최소 수개월 이상 걸리는 심사에서 탈락하면 다시 처음부터 심사 과정을 거쳐야 해 빠른 기술 개발이 중요한 R&D 부문에는 적합하지 않다는 지적이 많았다.

실제로 적지 않은 R&D 사업들이 예타 제도로 인해 사업 착수가 미뤄지거나 예산이 크게 깎인 바 있다.

3수 끝에 지난 달 예타 통과에 성공한 ‘저궤도 위성통신 기술개발’ 사업이 대표적이다. 해당 사업은 지난 2021년부터 거듭 예타에 도전했으나 경제성을 이유로 번번히 고배를 마셨다. 국제적으로 보면 스페이스X의 ‘스타링크’ 등이 빠르게 치고 나가고 있음에도 기술 개발을 시작조차 못했던 셈이다.

정부가 향후 미래를 바꿀 3대 게임체인저로 지칭한 첨단바이오의 경우에도 핵심 사업인 바이오파운드리 사업의 규모가 예타를 거치면서 8년 간 7434억원에서 5년 간 1263억원으로 줄어들기도 했다.

연구계에서는 예타 폐지를 반기는 목소리가 많다. 한 출연연구소 관계자는 “예타처럼 안정적이고 불필요한 손실을 줄인다는 건 사실 R&D와 상극이다. 연구에 있어 안정성을 우선 추구한다는 건 후진국형”이라며 “안정성 계산기를 두들기는 건 사실 실력이나 자신이 없다는 것이나 다름 없다. R&D는 일단 시작을 해야 하는데, 그런 측면에서 예타 폐지의 긍정적 측면이 크다고 본다”고 강조했다.

◆예타로 지난해에만 23조원 아껴…무분별한 R&D 예산 낭비 우려도

이처럼 예타 폐지가 정체돼있던 R&D 사업 착수에 날개를 달아주는 효과를 낳을 수 있지만, 재정투명성·건전성 강화라는 순기능을 놓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예타 폐지가 무분별한 R&D 사업 난립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는 우려다.

실제로 지난해에만 R&D 예타 제도를 통해 정부 재정이 약 23조원 가량 절감된 바 있다. 과기정통부에 따르면 지난해 접수된 국가 R&D 예타 사업은 16개 부처에서 51개, 총사업비는 30조1462억원에 달했다. 하지만 예타 대상선정 사업은 12개, 총사업비는 7조8303억원이었다. 사업의 실현 가능성, 경제성, 장비도입의 필요성 등을 검토한 결과였다.

또 1000억원 미만 사업의 예산 심의 절차가 완화되고 각 부처의 자율성이 커진 만큼 보다 빠른 사업 추진을 위해 사업 규모를 줄이고 개수를 늘리는 쪼개기 사업이 난립될 수 있다는 주장도 있다. 부처별로 각자 R&D 사업을 자율 수립하게 되는 만큼 중복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예컨대 과기정통부와 보건복지부가 비슷한 바이오 R&D 사업을 추진하게 되는 경우 등이 생길 수 있는 셈이다. 부처 자율성을 보장한다는 취지가 되려 비효율이 커지는 악효과를 낳을 수 있다.

이같은 우려에 대해 정부는 예타가 폐지되긴 하지만 국가 R&D 사업이 검토 없이 무분별하게 시행되거나, R&D 사업 예산이 급격하게 늘어나는 것은 아니라고 선을 그었다.

가령, 1000억 미만 사업의 경우 별도의 사전검토는 없지만 일반 국가 사업과 같이 기재부의 예산심의를 거쳐야 해 비현실적인 사업은 걸러지게 된다는 것이다.

또 1000억 이상 사업은 과기정통부와 기재부로부터 사전기획 점검제(연구형 R&D), 기본계획심사 및 추진계획심사(시설장비구축·체계개발)까지 받아야 한다. 이같은 새로운 관리 방안이 예타보다는 더 빠르게 R&D 사업을 추진할 것이라는 게 정부의 해명이다.

아울러 예타가 폐지되더라도 R&D 예산이 급격하게 수조원씩 늘어나는 것도 불가능하다고 강조했다. 예타 제도가 폐지되면 각 부처가 자율적으로 R&D 사업을 선정할 수 있게 되지만, 전체 예산 규모는 각 부처별로 기재부가 책정한 지출한도를 넘어설 수 없기 때문이다.

이같은 해명에도 불구하고 일각에선 R&D 예타 폐지안이 지난해 예산 삭감 사태로 흉흉해진 과학계의 민심을 달래기 위해 섣부르게 내놓은 선심성 정책에 불과하다는 평도 있다. 핵심 기술 부문 예타 면제·심사절차 간소화 등 기존 예타 제도 틀을 유지하면서 부작용을 최소화하는 개선책으로도 충분했다는 지적이다.

이와 관련, 조승래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최근 한 라디오 방송에서 “예타 제도는 전문가들이 참여해 검증하는 일종의 순기능도 있다”며 “예타 제도 폐지는 전문성·현장성이 떨어지는 공무원들이 예산을 결정하게 된다. (예타 폐지로) 오히려 더 나쁜 결과가 만들어질 것”이라고 꼬집었다.

한편 정부가 발표한 예타 제도 전면 폐지가 이루어지려면 국가재정법, 국가연구개발혁신법 등 관련 법령 개정이 필요하다. 정부는 법령 개정 전까지는 현행 예타 체제 내에서 신속한 R&D 사업 착수를 지원하고, 연구계 의견을 수렴해 3분기 중 법령 개정을 추진한다는 계획이다.

◎공감언론 뉴시스 hsyhs@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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