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뉴시스]이재훈 기자 = 중요한 건 형식이 아니라 자유다. 올해 데뷔 46주년을 맞은 그룹 사운드 ‘사랑과 평화’는 이름을 지켜온 세월 속에서 정형화되지 않은 리듬감도 잃지 않아왔다. 오래되면서 새로운 이유다.
1970년대 중반 미8군 무대에서 ‘서울 나그네’라는 이름으로 활동했다. 미8군 무대 오디션 최고 등급인 ‘스페셜 더블 A’를 받는 등 일찌감치 연주력으로 입소문이 났다. 1978년 펑키 사운드의 곡 ‘한동안 뜸했었지’를 발표하며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1980~90년대 공연과 클럽 무대에서 절정의 인기를 누렸다.
창단 멤버이자 현 사랑과 평화의 정신적 지주인 이철호(72)가 건재한 가운데 키보드 이권희, 기타 이해준, 베이스 박태진, 드럼 정재욱 등 5인으로 활약 중이다. 지난 세월 최이철(기타), 김명곤(키보드), 이남이(베이스), 송홍섭(베이스), 김태흥(드럼), 이근수(키보드), 장기호(베이스), 박성식(키보드) 등 당대 최고의 연주자들이 몸담았다. 작년에 국내 최고 권위의 대중음악 시상식인 ‘제20회 한국대중음악상’에서 공로상을 받았다.
오는 10월6일 오후 5시 서울 마포구 마포아트센터 아트홀 맥에서 여는 단독 콘서트 ‘사랑과 평화 펑키 콘서트(Funky Concert)’는 추억팔이가 아닌 이 밴드의 현재진행형과 미래를 보여주는 자리다. 자신들이 한결 같이 고수 중인 솔 & 펑키(funky) 스타일의 진수를 보여주겠다고 예고하고 나섰다.
여전히 국내에서 변방으로 취급 받는 펑크(funk)를 제대로 영접할 수 있는 기회다. 이들은 여전히 한국의 펑크를 발굴하고 있다. 그들의 다른 리듬은 특이한 것이 아닌 특별함을 만들어내는 중이다. 다음은 최근 경기 고양 연습실에서 다섯 멤버들과 나눈 일문일답.
-펑크(funk)란 뭔가요?
“펑크는 흑인 길거리 음악이에요. 굉장히 거칠고 자유롭죠. 많은 팀들이 나오면서 바뀐 부분들이 있어요. 깨끗한 펑크가 있고 학구적인 펑크가 있고 펑크도 장르가 많이 나눠져요. 저희는 사실 깨끗한 쪽이죠.”(이철호)
“음학적으로 얘기하면, 록 같은 경우는 박자가 딱 떨어지거든요. 근데 펑크는 수치상으로 따지면 틀린 것 같은데 귀로 들었을 때 맞아요. 그러니까 한계가 극한까지 가는 거죠.(이권희)
“그러니까 비트적인 이야기죠. 첫 박이 0이고 둘째 박이 20이라면, 꼭 0에 안 떨어지고 마이너스에서 떨어질 수도 있고 그다음에 10 정도에서도 떨어질 수도 있는 거예요. 박자가 틀렸다고 이야기하는데 박자가 틀리지 않게 우리 귀에 들렸을 때 그 만큼의 간격이 되게 넓어요. 그래서 느낌상으로 보면 허우적거리는 것처럼 보이는 거죠. 각진 음악이 아니라 스윙감을 가지고 가는 거죠. 이젠 영미권 팝 음악에도 이 스윙감이나 솔(Soul)적인 게 자연스럽게 들어가요. 이제 이 요소가 없으면 음식에 소스가 안 들어간 것처럼 되죠. 힙합도 블루스 솔에서부터 나온 리듬이죠.”(이호철)
-사랑과 평화 이후 국내에도 몇몇 펑크 팀이 출현했지만 롱런하지는 못 했어요.
“저희는 정통 펑크를 하고 있어요. 근데 다른 팀들은 정통 펑크보다 퓨전이 가미가 됐어요. 정통 펑크의 맛이 나는 팀을 잘 보지를 못했어요.”(이호철)
-사랑과 평화 초창기 활동이 궁금합니다.
“먼저 미8군에서 좋은 결과가 있었어요. 당시 드물게 미8군 무대 오디션 최고 등급인 ‘스페셜 더블 A’를 받았어요, 굉장히 획기적이었죠. 1970년대 중후반 클럽 무대에 나왔을 때 우리 같은 음악을 하는 팀이 대한민국에 우리밖에 없었죠. 당시엔 백인 컨트리 록 같은 팀들이 많았어요. 미국 컨트리 록밴드 ‘크리던스 클리어워터 리바이벌'(CCR)처럼요. 리듬 자체가 틀려버리니까 사람들이 우리 음악에 춤도 잘 추지 못했어요. 그래서 저랑 이남희 형님하고 저하고 리듬 타면서 막 돌아다니닌 거예요. 거기에 사람들도 동조하면서 같이 놀고 그러다 보니까 재밌어지는 거죠. 그래서 펑크는 ‘무대 스테이지 매너’라는 것도 굉장히 중요하죠. 그래서 펑크는 가수 때문에 팀 색깔이 달라지는 거예요. 만약 우리 팀의 보컬이 김경호, 김종서였다면 지금의 색깔과 다르겠죠”(이철호)
-이권희 선생님은 언제부터 펑크를 접하신 건가요?
“저는 사실 이철호 형님 만나기 전엔 블루스, 로큰롤을 좋아했어요. 1999년 세션으로 처음 뵀는데 그 때 형님 수준에서 저를 보면 완전히 맹물이었죠. 이제 시간이 지나다 보니까 지금은 이제 그 느낌에 대해서 논할 수 있는 정도가 됐는데 모두 형님 덕분이죠. ‘새로운 걸 뚫고 나가야 되는 것’에 대한 고민을 많이 던져주셨어요.”(이권희)
-이해준 씨랑, 박태진 씨, 정재욱 씨는 팀에 언제 합류하셨고 선생님의 어떤 점에 영향을 받으셨는지요.
“제가 막내인데 같이 한 지는 10년 됐습니다. 제가 전에 일하던 클럽에 한 번 놀러오신 적이 있었고 그 때부터 함께 하고 싶다는 생각을 정말 많이 했어요. 클럽을 관둔 이후 제안이 와서 너무 영광스럽게 하고 있습니다. 특히 선생님은 대강대강하는 걸 정말 싫어하세요. 그렇다고 제가 전에 대강대강한 건 아니지만 음악에 대해 좀 더 예민하게 보고 더 생각할 수 있게 해주셨어요.”(이해준)
“2010년가, 11년인가 오디션을 봤어요. 철호 형님이 사랑과 평화 멤버들을 다시 구한다고 하셨어요. 그 전까지는 펑크에 대해 잘 알지 못했어요. 또 악보를 보는 게 버릇이 돼서 오디션 보러 갈 때도 그래야 하는 줄 알고 악보를 그려갔어요. 그런데 형님이 ‘악보 보고 하는 게 음악이냐?’고 물으시더라고요. 제가 ‘그럼 악보 안 보고 어떻게 하죠?’라고 되물었어요. 그랬더니, 형님이 ‘틀려도 괜찮으니까 외워서 해라’마고 답하시더라고요. 이후에 함께 하게 됐고 어느 순간부터 악보를 외우는 게 더 연주할 때 집중력이 생기더라고요.”(박태진)
“저는 2007년에 처음 합류를 했어요. 스물일곱 살에 유학을 가려고 준비 중이었어요. 그런 와중에 오디션을 보러 봤다 대장님(이철호)의 드럼 소리를 듣게 됐어요. 이론적으로 뻔히 알고 있는 리듬인데 너무 새롭게 들리는 거예요. 그 때 ‘이건 유학을 가서도 못 듣는 거다. 못 배운다’라는 생각을 했어요. ‘오디션에 합격했다’는 말씀은 따로 안 하셨는데 어떻게 하다 보니 쭉 같이 하게 됐죠.”(정재욱)
-선생님 오디션 기준이 따로 있었나요?
“일단은 제일 먼저 성실함을 봐요. 그래야 서로 오랫동안 갈 수 있어요. 다섯 명이 같이 하는데 성실하지 않으면 금방 허물어지죠. 근데 우리 멤버 전부 이 부분이 갖춰져 있더라고요.”(이철호)
-더 잘 아시겠지만 밴드는 오래 유지하기 힘들잖아요. 특히 현 사랑과 평화는 주로 동년배들이 뭉친 밴드와는 다른 느낌이 있어요. 밴드는 음악뿐만 아니라 태도, 가치관도 공유해야 하잖아요?
“선후배에 대한 문제는 아닌 거 같아요. 서로 배려하고 서로 존경해야죠. 선배는 선배로서 해야 하는 도리가 있고 후배들은 후배들로서 해야 할 도리가 있는 거죠. 그런 거 서로 잘 지켜가면서 각자 솔선수범을 하는 게 밴드의 생명력을 늘이는 제일 쉬운 일 같아요.”(이철호)
“일단 윗물이 맑아야 돼요. 일단 형님이 바른 생각을 갖고 정도를 걸으시니까 이렇게 할 수 있는 거예요.”(이권희)
-철호 선생님은 여전히 멋쟁이세요. 흰색 옷을 그렇게 소화실 수 있다니요.
“밴드는 시각적인 부분도 갖고 있어야 하죠. ‘콘서트를 보러 가자’고 하지 ‘들으러 가자’고 하지 않잖아요. 볼 게 없으면 의미가 없는 거죠.”(이철호)
-새 앨범도 준비 중이시죠?
“지금 준비하고 있어요. 사랑과 평화에 제일 맞는 ‘솔 펑크’스러워야 한다는 게 가장 우선이죠. 그래야 사랑과 평화 색깔이 확실하게 나오죠.”(이철호)
“사랑과 평화의 네임 밸류도 생각해야 되고 팀의 히스토리를 봤을 때 음반을 함부로 낼 수 없는 지점들이 있죠.”(이권희)
-최근 대중음악 시장에 밴드 붐 얘기가 많이 나옵니다.
“큰 기획사에서 하는 밴드들이 인기가 있는 거지, 기획사 없고 자생하는 밴드들에겐 큰 의미가 없는 거예요. 작년에 ‘불꽃밴드’에 출연한 이유도 그래서였어요. 일단 경연이 저희에게 안 맞고 나가서 잘 해도 본전이었어요. 그럼에도 밴드들이 너무 힘들어하고 너무 묻혀 있으니까 어떻게 살려볼 수 있는 계기를 만들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출연한 거죠. 책임감, 사명감이 없었으면 출연이 힘들었을 거예요. 저희가 제일 나이 많은 팀이었죠. ‘불꽃밴드’가 저희 활동에 도움이 되기도 했어요. 그런데 음악에 돈이 들어가는 순간 순수성이 떨어져요. 음악은 물질이 아니고, 감성적인 거죠. 음악을 한다면 돈하고는 거리가 있어야 된다고 생각해요. 아티스트라면 그런 생각을 갖고 있어야죠. 아울러 저희는 희소 가치가 굉장히 큰 팀이에요. 그런데 여기서 더 못 나아가는 건 저희 책임도 있어요. 그 넘어서야 될 부분을 남 탓하는 것보다 우리 스스로 만들어내고 싶어요. 그리고 유행은 돌고 돌아요. 저희 같은 밴드도 주목 받는 시대가 올 겁니다. 제가 살아있는 동안은 좀 더 좋은 팀을 만들어놓고 싶어요. 우리 멤버들 10년 동안 정말 많이 늘었어요. 그리고 스포츠 선수는 생물학적으로 나이가 들면 더 못 하잖아요. 근데 연주자들은 나이가 들수록 에너지는 예전 같지 않아도 맛이 더 깊게 나오니까 좋은 지점이 있죠”(이철호)
“제가 연주하는 소리가 10년, 20년 전보다 제 귀에 더 잘 들려요. 예전에 못 느꼈던 소리도 듣고 전체 사운드도 파악이 가능해졌어요. 연식이 늘어나니까 이런 감각이 나오는 거죠. ‘나이 들어서 이거 얼마 못 하겠는데’ 이런 생각이 전혀 안 들어요. 특히 형님은 여든 살까지도 충분히 하실 수 있을 것 같아요.”(이권희)
-사랑과 평화가 계속 새로울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우리나라는 특별한 장르에 대한 수용 폭이 좁아요. 그럼에도 우리 색깔을 찾고 우리 색깔에 필요한 음악들을 하고 있으니까 저희가 매번 새롭게 느껴지는 거죠.”(이철호)
◎공감언론 뉴시스 realpaper7@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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