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의 변화는 ‘내적 원리’…우아하고 감상적인 카리나 시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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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이재훈 기자 = “‘나를 포함해 모든 창조된 존재는 변화를 겪는다. 따라서 창조된 단자(볼)도 변화를 피할 수는 없다. 그 변화는 단자(볼) 속에서 연속적으로 행해지며, 누구나 인정하는 사실이다. 결국 단자(볼)의 자연적 변화는 내적 원리로부터 온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외적 원인은 단자(볼)의 내부에 작용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알겠나? 라이프니츠 선생은 공이 변화하는 이유가 그 내적 원리에 있다고 말하는 거야. 놀랐어, 나로서도 말이야.”

야구광이면서 포스트모던 소설의 마니아라면 알아들을 이 유명한 문장. 일본 작가 다카하시 겐이치로의 소설 ‘우아하고 감상적인 일본 야구'(1988)(박혜성 옮김·웅진지식하우스)를 읽은 독자라면, 투심 패스트볼이 가슴팍에 꽂히는 느낌을 받을 것이다.

야구라는 것이 사라진 미래를 배경으로 하는 이 지적이면서 근사한 소설 속에서 주전투수는 독일 철학자 라이프니츠 ‘단자론’에 경도돼 있다.

단자론을 거칠게 요역하면 이렇다. 단자들은 창(窓)이 없다. 서로 상호 작용을 하지 않고 물리적인 영향을 주고받지 않는다는 뜻이다.

이 단자론은 ‘우아하고 감상적인 일본 야구’ 속에서 이렇게 해석된다. “결국 단자(볼)의 자연적 변화는 내적 원리로부터 온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외적 원인은 단자(볼)의 내부에 작용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라이프니츠 선생은 공이 변화하는 이유가 그 내적 원리에 있다고 말하는 거다. “투수가 공을 변화시키는 게 아니”라는 얘기다. “투수는 그 계기를 만들어줄 뿐이고, 공기의 저항 때문에 공이 멋대로 구부러지는 거”다. 결국 소설 속 주전투수는 이렇게 생각한다. “내가 슬럼프에 빠진 건 공의 내적 원리를 파악하지 못했기 때문이 아닌가 하고. (…) 사람들은 모두 단자(볼) 속에 내제한 다양함을 인정해야 한다.”

초신성 걸그룹 ‘에스파(aespa)’ 카리나는 이런 야구에 녹아든 단독성을 파악한 것으로 보인다.

카리나는 9일 오후 부산 사직구장에서 ‘SOL 뱅크 KBO리그 – 롯데 자이언츠 대 SSG 랜더스’ 더블헤더 2차전을 앞두고 시구를 했는데, 첫 시구임에도 스트라이크를 던졌다.

카리나가 야구장과 인연이 없었던 건 아니다. 지난해 6월8일 미국 메이저리그(MLB) 뉴욕 양키스 스타디움에서 열린 뉴욕 양키스와 시카고 화이트 삭스 경기의 시구자로 에스파가 마운드에 올랐는데 공은 다른 멤버 윈터가 팀을 대표해 던졌다.

지난 3월20일 서울 고척스카이돔에서 열린 올해 MLB 정규시즌 개막전 ‘LA다저스와 샌디에이고 파드리스 경기’에선 에스파는 축하 무대만 꾸몄다.

카리나가 이번 시구에서 던진 구종을 굳이 따져보면 ‘팜볼’로 보인다. 네 개의 손가락을 이용해 공을 밀어던지는 데 가까운 구종이다. 시구한 공이 마운드와 홈 플레이트 사이의 거리인 18.44m를 온전히 감당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은데, 카리나의 손을 떠난 공은 고상한 포물선을 그리며 스트라이크 존을 통과해 포수 손성빈의 미트에 꽂혔다.

카리나의 투구 폼엔 꾸밈이 없었다. 억지로 스트라이크 존에 던져야겠다는 욕심도 없었다. 볼(단자) 속에 내재된 다양함을 인정하고 그와 대등하게 단독성으로 손에서 떠나보냈을 뿐이다. 우아하고 감상적인 카리나 시구다.

야구복도 잘 어울렸다. 이날 카리나는 롯데칠성음료 맥주 브랜드 크러시(KRUSH)와 롯데 자이언츠가 협업한 파란색 바다유니폼을 입었다. 등번호는 00번이었다. 카리나는 크러시의 모델이기도 하다.

그런데 카리나의 이번 시구는 상업적인 부분을 넘어 야구계와 K팝계에 큰 화제가 됐다.

카리나의 시구가 예고된 이후 기대감으로 온라인이 떠들썩했다. 전날 경기가 우천으로 연기돼 이날 더블헤더로 치러지면서 카리나의 시구가 취소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컸다. 이날 오후엔 대구에서 사인회가 예정된 것으로 알려졌기 때문이다. 엑스(옛 트위터)엔 “카리나가 제 시간에 시구를 할 수 있도록 해주세요!” 등 카리나 시구를 위해 일정을 조정해달라는 각종 요청이 SM엔터테인먼트로 향했다.

해설진도 카리나의 시구에 큰 기대를 걸었고 감흥했다. “더그아웃 풍경도 볼 만하네요. (카리나 시구를 보려고) 지금 다 매달려 있어요”라고 설명했다. 카메라가 카리나 얼굴을 비추자 “비현실적인 풍경”이라는 감탄도 나왔다.

카리나가 시구를 한다는 예고 직후 이날 경기는 일찌감치 매진됐다. 평소 야구에 관심이 없던 K팝 팬들과 에스파 팬덤 ‘마이’도 상당수였다. 객석 곳곳엔 카리나 응원 문구가 등장했다. 에스파 응원봉 ‘스봉’도 눈에 띄었다.

사실 최근의 K팝 인기와 프로야구의 인기는 공통점이 많다. 멤버 혹은 선수 팬덤 위주로 소비층이 형성돼 있고, 팬들이 일체감을 느낄 수 있는 응원법도 많다. 인기 콘서트(경기)의 예매는 피케팅을 뚫어야 한다. 물론 K팝 팬들은 오늘 최애가 컨디션이 좋지 않아도 싫은 소리는 절대 하지 않지만….

일각에선 K팝이 너무 팬덤 위주로만 돌아가는 게 아니냐는 시선이 나오는데 카리나 같은 대형 스타가 다른 장르와 협업을 하는 모습은 K팝의 라이트 팬을 늘릴 수 있는 방법 중 하나가 될 수도 있다. 이날 그녀의 시구 풍경이 그 계기 중 하나가 됐다.
◎공감언론 뉴시스 realpaper7@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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